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날씨가 화창한 5월 22일(목) 오후 3시, 만리포고등학교 강당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 약 230명의 전교생이 모두 모이자 극단 ‘샐러드’의 박경주 대표와 연출을 맡은 로나 드 마테오 무대 감독이 공연 소개를 시작했다. 제작진 및 출연진이 다국적 이주민으로 구성된 극단인 만큼 인사말부터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됐는데,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또한,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자 아직 조금은 한국말이 어색한 출연진들의 대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리핀어로 머리핀을 뜻하는 ‘수크라이’는 다문화 창작뮤지컬로, 축제 문화와 놀이 문화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공연 초반에는 필리핀 다문화 가정의 2세인 경희가 학교 친구인 진주와 친해지고 싶어 하지만, 진주와 친구들에게 상습적인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족들과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난 진주가 우연히 그곳에서 경희를 만나게 되고, 함께 평화롭고 즐거운 필리핀 문화를 경험하면서 둘은 물론 경희와 진주의 가정도 화합하게 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를 담고 있다.

최근 학교 폭력 문제로 교육 현장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 학교 폭력 문제에서만큼은 다문화 가정 학생이든 아니든 경험에 큰 차이가 없는 까닭에 관람하는 모두가 작품에 크게 공감했다. 3학년 윤병진 학생은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이 이뤄지는 현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며 “서로 간의 이해와 우정을 통해 우리의 삶과 다양한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메시지를 담은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공연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을 새롭게 가다듬는 한편, 학생들끼리 공유하는 또래문화로 공감대도 형성했다. 실제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학생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휴대폰 사용이나 외모 가꾸기, 시험이나 성적 등과 관련된 장면에서는 강당 곳곳에서 웃음과 감탄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학생들에게 있기 있는 대중가요에 맞춰 극중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모두가 큰 환호를 보내며 따라 불렀다. 3학년 강혁 학생 역시 “처음에 대사 전달이 조금 매끄럽지 않아 이해가 잘 안 됐는데, 배우들이 평소에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체육복을 입고 좋아하는 그룹의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이 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문화로 마음 따스해지는 시간

이어서 강혁 학생은 “이런 공연을 볼 기회가 흔치 않아서 다들 더욱 즐거워했던 것 같다”며 “학교까지 찾아오는 공연이라 고마운 마음이 더욱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생들은 높은 호응을 보이며 공연을 즐겼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작품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박정희 교사는 “학생복지부 선생님들이 ‘친구사랑 주간’에 맞춰 이번 공연을 신청하게 됐는데 만족도가 높다”면서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였으며 교사로서도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현지 적응에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헤아려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극단 ‘샐러드’의 박경주 대표는 “지금까지는 초·중학교를 주로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고등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서 기분 좋고 감사하다”고 답했으며 “충남 지역으로는 처음 방문했는데, 앞으로 꼭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 펼쳐진 공연 막바지에 ‘사랑하고 함께 살 수 없을까,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을까, 우리 모두, 친구야, 서로 달라도, 우리 함께 평화로운 학교를 만들자’는 독창을 부르며 열연한 경희 역의 배우 안내쉬는 “오늘이 ‘수크라이’ 작품으로는 다섯 번째 공연이었는데 관객 반응이 적극적이어서 더욱 신나게 공연했고 큰 보람을 느꼈다”며 “학생들의 성숙한 관람 태도”를 칭찬하기도 했다.

복권기금 문화나눔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는 ‘신나는 예술여행’은 각 분야에서 선정된 우수 문화예술 단체가 사회복지시설, 농산어촌, 임대주택, 교정시설, 군부대 등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곳을 직접 찾아가 공연을 펼치는 사업이다. 올해도 4월부터 11월까지 약 2000회의 공연을 통해 전국 각지의 주민들과 함께 양질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나눌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