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 양육 전문가 민경미 씨(왼쪽)가 이운향 씨와 아들 우진 군에게 찰흙놀이를 통해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구랍 12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이운향(29) 씨 집에서는 이씨와 아들 우진(4) 군, 그리고 아동 양육 전문가 민경미(42) 씨가 찰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놀이는 민씨가 이씨에게 아이와 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런데 우진 군보다 이씨가 더 신이 난 듯하다.
2004년 중국(조선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씨와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아동 양육 전문가 민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초. 두 사람은 복권기금으로 운영하는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의 일환인 아동 양육 방문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연이 닿았다.
2000년대 이후 결혼이민자가 급증하자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은 결혼이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과 다문화가족의 원만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결혼이민자들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업 초반에는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이해 등을 통해 결혼이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그들의 취업과 육아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그중 육아 문제를 지원하기 위해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미술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아동 양육 전문가가 일주일에 두 번씩 다문화가족을 방문해 자녀 양육에 관한 상담 및 교육을 해주는 아동 양육 방문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민씨는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면서 아동 양육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문화가족 자녀들 가운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녀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선생님은 친정엄마”

두 사람은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힘들어요. 한국인도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죠.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말할 상대가 전혀 없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어려운 것이 뭐냐,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펑펑 울었어요. 울었던 기억밖에 없네요.(웃음)”(이씨)
“2시간 동안 울다 이야기하다를 반복하더군요. 열심히 들어줬죠. 사실 우리의 목표는 결혼이민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결혼이민자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없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예요.”(민씨)
민씨는 아동 양육 방문교육을 가면 대부분의 결혼이민자 엄마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엄마가 심리적으로 안정돼야 양육도 잘할 수 있는 법. 그래서 그는 초기(2개월 정도)에는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 집중한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면 은행 업무든 한국어 공부든 영어 공부든, 뭐든지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신뢰를 형성한 뒤에 양육 교육을 하면 훨씬 효과가 좋다고 민씨는 말한다. 결혼이민자가 그를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민씨에 대한 이씨의 신뢰도 상당하다. 이씨는 “선생님을 안 만났으면 우리 우진이가 어떻게 자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진이가 24개월이었는데, 그때까지 저는 기저귀 가는 것도 서툴렀어요. 육아에 대해 전혀 몰랐죠. 배고프면 밥 주고, 울면 때리고, 그냥 그렇게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는커녕 불만만 가득했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어요. 그러니 양육을 잘할 리 없었죠.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이씨는 민씨를 통해 한국과 한국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이해하게 되니 불만도 조금씩 사라지고, 마음의 여유도 찾을 수 있었다고. 무엇보다 민씨를 통해 양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는 ‘그냥’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와 아빠의 구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지금 우진이가 너무 얌전하고 소극적인데, 혹시 예전에 제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씨는 또한 ‘선생님은 만능’이라고 칭찬한다.
“선생님은 육아 문제, 시댁 문제, 가족 문제, 진로 문제 등 모든 것을 상담해줘요. 요즘은 인터넷뱅킹도 가르쳐주고, 우진이 학습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도움을 주죠.”
이씨의 칭찬에 민씨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요리하고 청소하는 방법, 김장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한다. 아동 양육 전문가는 양육 상담 및 교육뿐 아니라, 친정엄마처럼 결혼이민자들의 전반적인 고민을 해결해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
민씨의 권유로 이씨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올 3월에는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한다. 민씨는 한국방송통신대학의 경우 결혼이민자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준다면서 이씨에게 고등학교에서 멈추지 말고 대학까지 도전해보라고 격려한다.
이씨는 “선생님은 나에게 자신감과 행복을 가져다줬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자 민씨는 이씨에게 오히려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또한 “운향 씨처럼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면서 “잘 살기만 바랄 뿐”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