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끝자락의 작은 갤러리, 낯선 그림들 사이로 사람들이 서있다. 그 옆에는 조금은 불편한 몸(지체장애3급)을 한 백종환 씨가 함께했다.

“도자벽화는 무게도 만만치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또 건물 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서 작품으로 소장할 수 없고요. 외국에서는 파인아트라고 해서 흙을 이용한 장르가 있는데 우리나라엔 없었죠. 그래서 제가 도자벽화를 소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봤어요.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죠.”

흙을 구워 캔버스 삼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형 도자벽화, ‘흙그림’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다. 그런 일반인을 위해 백 씨는 전시장을 지키며 그림에 대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작업실이 여주에 있어요. 여주에서도 아주 깊은 산골에 있죠. 그래서 이렇게 나올 때마다 나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보고 싶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요. 하지만 이 전시는 저만의 전시가 아니에요. 나라의 도움을 받아 열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전시를 열어야 하지요.”

백 씨의 흙그림 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복권기금 창작나눔 지원을 받아 열렸다. 복권기금은 장애인의 문화복지 증진을 위해 장애예술가나 단체의 표현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사비로 전시를 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전시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전시장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다고. 전시뿐만이 아니다. 그는 작품 활동을 할 때에도 ‘나라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하는 장애 작가’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잊지 않는다.

흙을 구워 만든 캔버스에 그림 그려

“사실 저는 저를 장애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작가라고 생각하죠. 장애 작가라고 하면 그 호칭이 제 작품에 핸디캡이 될 때가 있어요. 보통 장애 작가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경우보다는 다른 활동을 하다가 뒤늦게 작가로 데뷔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혹여 제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져 보일까봐 걱정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 작가임을 숨기지 않아요. 왜냐하면 장애 작가 중에는 저처럼 전문 작가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그걸 자꾸 알려야 장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선입견도 깨질 테고, 비전문 장애 작가도 자극을 받아 좀 더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테니까요.”

개인의 작품을 잘 그리고 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장애 작가의 희망이 되어 장애 작가의 예술적 측면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싶다는 백 씨. 그는 더 나아가 장애 작가뿐 아니라 장애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작년에는 인천광역시 시립도서관 안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하루에 1000여 명이 다녀갔는데 입시를 앞두고 긴장한 아이들이 제 작품을 보고 희망을 얻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게 제 활동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지 않거든요. 절 보면서 비장애인인 자기들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작가가 할 일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일 말이죠.”

이번 전시회에 선 보인 그의 작품엔 종이비행기와 종이배가 자주 등장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그의 바람이 담겨져 있다. 전시를 오는 사람들에게 동심의 세계를 떠올려보라고 그의 작품은 외치고 있다.

“우리 누구나 외롭고 힘들죠. 특히 가을은 쓸쓸하고 우울해져요. 흙이 주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있습니다. 또 제 그림에는 열정과 희망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 작품에는 동심의 세계가 담겨져 있습니다. 제 그림을 보면서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고 순수했던 마음을 다시 떠올려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