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부평동에 위치한 한 합주실에 키보드, 기타, 드럼, 베이스 등 악기를 든 청소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악기를 세팅하고 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들은 청소년 밴드 ‘골목길’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함께 모여 연주 연습을 해오고 있다. 이날 연습할 곡은 윤도현 밴드의 ‘난 멋있어’와 크라잉 넛의 ‘룩셈부르크’. 강사의 지휘에 맞춰 아이들의 연주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어긋나던 소리가 점점 조화를 이루었다.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들의 표정도 어느새 진지해졌다.

‘골목길’은 인천 부평구 십정동 주민센터 해님공부방(이하 해님방)을 졸업한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밴드다. 해님방은 1986년에 만들어진 십정동 지역교육공동체(공부방)로서 상근교사와 자원교사가 마을에 거주하는 초중생과 함께 공부와 봉사활동 등을 해오고 있는 단체다. 고등학생이 되면 학생들은 해님방을 졸업한다.

하지만 졸업 후에도 소속감을 갖고 만남을 이어가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많다. 해님방 교사이자 밴드를 지도해온 강헌구 씨는 “졸업생들이 종종 모여서 놀거나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좀 더 문화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고민 끝에 2010년 5월 청소년 밴드 ‘골목길’을 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밴드를 결성하기로 했지만 악기 구입, 강사 초청, 연습실 대여 등 부담이 컸다. 그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곳이 바로 복권기금이다. 2010년 5월부터 복권기금 문화나눔사업 지원을 받게 된 것. 덕분에 드럼, 기타, 키보드 등의 악기와 앰프 등 음향기기를 구입할 수 있었고 전문 강사를 초청해 음악 수업도 받을 수 있었다. 강 씨는 “복권기금이 없었다면 밴드 활동을 구체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골목길’ 멤버 중에는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밴드 활동을 통해 첫걸음을 뗐다. 밴드 결성 때부터 활동해온 김호진(19) 군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베이스를 연주해보였다. 김 군은 베이스를 치기 전에는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없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김 군은 “음악을 배울수록 점점 더 많은 음악을 찾아 듣고 연습하고 싶어진다. 이제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취미가 생겼다”며 뿌듯해했다. 올해 1월 밴드에 합류해 5개월째 키보드를 배우고 있는 신준호(16) 군 역시 새로운 취미가 생겨 기쁘다. 신 군은 “처음에는 기초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계속 배우고 연습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있다. 형들처럼 빨리 연주를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게임 대신 악기 배우니 부모님 반응도 좋아

밴드 활동을 시작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밴드 결성 때부터 활동하며 일렉 기타를 배워온 김재석(18) 군은 “예전에는 학교에서 조용한 편이었고 어울리는 친구도 정해져 있었다. 밴드 활동을 하는 게 알려지면서 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일렉 기타를 연주할 기회가 생겼다. 그 뒤로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거는 친구도 생겼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도 친해졌다”고 말했다.

부모님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주말을 대부분 방 안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면서 보내던 아이들이 밴드 연습에 참여하려고 부지런해진 모습을 보고 흐뭇해한다고. 강 씨는 “부모님들께서 공연을 직접 보러 와서 호응도 많이 하고 칭찬도 많이 한다”고 귀띔했다.

십정동은 구석구석 나 있는 골목길이 특징인 동네다. 밴드 이름 ‘골목길’은 이런 지역 특성에서 따왔다. 과거 골목길은 아이들에게 숨바꼭질을 하고 뛰노는 놀이터였지만, 요즘에는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재석 군은 “비록 골목길을 직접 뛰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 연습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호흡을 맞추는 게 비슷하지 않냐”며 “은유적인 표현에서 골목길이라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김호진 군이 “골목길은 마을 곳곳에 뻗어 있다. 우리 음악도 사람들 마음 곳곳에 뻗어나가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의미를 덧붙였다.

‘골목길’은 지금까지 총 3회 공연을 했다. 멤버들이 꼽은 최고의 공연은 2010년 12월 부평문화사랑방 소공연장에서 선보인 첫 공연. 앙코르 요청을 받을 정도로 반응도 좋았다. 김호진 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해봤다”며 “그때 느낀 뿌듯함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골목길’은 7월에 개최되는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찬조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인천에서 ‘골목길’이 알려지면서 이들을 찾는 곳도 서서히 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아이들에게서 밝고 즐거운 에너지가 넘쳤다. 올해로 3년째인 밴드 ‘골목길’이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교사 강 씨는 “밴드 활동이 아이들에게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키보드, 드럼, 기타 등 맡은 악기가 다르듯 아이들의 바람도 다양했다.

“관객들에게 ‘멋있다’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김호진 군)

“우리 밴드의 사진이 실린 디지털 싱글 앨범을 내고 싶어요.”(김재석 군)

“실력을 키워서 경연대회에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신준호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