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우상현 CFC(상품공동기금) 겸임이사, 경제학 박사

인류가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현대 문명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발명품 3가지를 꼽는다면 불, 수레, 그리고 화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화폐가 도입되면서 영리 추구 및 이윤 동기에 의한 경제 활동으로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화폐로 표시되는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합리적 사고와 효율적 영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기후 변화에 따른 농작물 생산 변동이 경제 문제의 핵심이었다.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계속되면 식량을 충분히 비축해놓을 수 없어 농촌 자체가 붕괴되는 경우가 많았고, 풍년이 들어도 생산 과잉에 따른 농산물 가치의 폭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근대 이후 도시가 발달하고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상업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상품들이 등장하게 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험(insurance)이다.

보험은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손해를 다수의 사람들이 부담을 나눠 대비하는 금융상품이다. 질병의 치료를 위한 의료보험, 자동차 사고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손해보험, 급작스러운 사망에 따른 유가족 생계 대책을 위한 생명보험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험은 일정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불행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고, 그 손실을 준비하는 합리적 대비책인 셈이다.

이때 개인이 지불하려고 하는 보험료는 미래에 예상되는 손실금액과 발생할 가능성, 즉 확률을 곱한 값이라고 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예상되는 손실이 1000만 원이라고 할 때 발생 가능성이 1000분의 1이라면 기꺼이 1만 원(1000만 원×1/1000)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 보험의 기본 원리다. 보험 가입자는 1만 원의 보험료로 미래의 불확실한 불행인 1000만 원 손실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보험이 미래에 발생할 우려가 있는 불행에 대비한 금융상품이라면, 복권은 반대로 비록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구매하는 또 다른 차원의 금융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복권을 구매하면 그때부터 자신과 가족의 행운을 기대하면서 최종 당첨 번호가 발표되는 시점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이때 개인이 지불하려고 하는 복권 구매액은 이론상으로 미래에 기대되는 당첨금과 당첨 가능성, 즉 확률을 곱한 값이라고 할 수 있다. 기대되는 당첨금이 1억 원이라고 할 때 당첨 가능성이 10만분의 1이라면 기꺼이 1000원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 복권의 기본 원리인 것이다. 즉, 복권 구매자는 1000원을 내고 미래의 불확실한 행운 1억 원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다림’으로의 전환

보험과 복권 모두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 혹은 이익을 불확실성 차원에서 그 가능성에 확률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적용해 개발한 상품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단, 보험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행에 대비해 구입하는 것이라면, 복권은 미래에 발생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행운에 대한 기대로 구입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반대의 상품이자,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보험이라는 논리적 도구를 도입해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미래의 불행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해소했듯이, 복권은 누구나 미래의 행운을 기대하면서 비록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하루하루를 기다림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차원의 금융상품이라고 하겠다.   

우상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예일대학 석사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 포) 경제학 박사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 및 금융정책과 서기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 산업금융과 과장

현 주제네바 대표부 재정경제관

CFC(상품공동기금) 겸임이사

*CFC(Common Fund for Commodities)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소재하고 있는 국제금융기구로, 개발도상국의 1차 수출상품 가격 안정화를 위해 100여 개 국가가 출자해서 만든 기금이다.